↑↑ 현암 최 정 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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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15세기 매월당 김시습에 의해 초암차가 일본에 전래된 과정을 연구하게 되기까지는 미국인 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 박사(1910-1996)로부터의 영향이 컸다. 존 카터 코벨 박사는 1978년에서 1986년까지 서울에 머물면서 영문으로 한국 미술사에 관한 1400편의 글을 발표하고, 『한국이 일분문화에 미친 영향』, 『한국 도자기의 세계』, 『한국 문화의 뿌리』 등 여러권의 저서를 출간한 바가 있다. 특히 그녀는 신라 문화에 매료되어 경주를 수십 차례 방문하여 경주의 문화유산에 관한 많은 글들을 남기기도 했다. 이때 필자는 4년간 코벨 박사로부터 일본 중세 미술사와 다도사에 대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존 카터 코벨 박사는 1910년 미국 위스콘신 태생으로, 오벌린 대학에서 에드윈 라이샤워(전 주일 미국대사)와 함께 일본사를 전공한 후, 1930년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일본인 미술사학자 후쿠이 리키치로(福井利吉郞, 1886-1972)와 미국인 미술 사학자 랭돈워너의 지도로 동양 미술사를 전공했다. 코벨 박사는 대학에서 틈나는 대로 중국어와 한문을 연구하여 동양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습득했다. 1933년부터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고고학을 3년 동안 연구했고, 1941년에는 ‘15세기 일본 선화가(禪畵家) 연구’로 서양인 학자로는 최초로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수료했다. 마침 이때는 일본과 미국이 태평양 전쟁 중인 관계로 상대국을 적대시하면서 양국이 몹시 껄끄러운 관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대국의 화가와 작품 세계를 연구하여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에서, 그것도 자신이 출판 경비를 부담하여 『봉인된 셋슈, Under seal of Sesshe』라는 한권의 책을 미국 학계에 소개했다. 이러한 코벨 박사의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열정이 아니었다면 중세 일본의 셋슈라는 화가가 서양 학계에 알려지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코벨 박사는 한 권밖에 없는 소중한 이 책을 필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코벨 박사의 초암차 연구

↑↑ 초암차 조선 전래설을 주장한 동양 미술사학자 코벨 박사와 필자(1982년). 필자는 은사 코벨 박사에게 1981~1985년까지 15세기 일본 미술사와 초암차의 기원에 관해 개인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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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벨 박사는 태평양 전쟁이 종전된 후, 1959년에서 1978년까지 미국의 리버사이드 켈리포니아 주립대학과 하와이 대학에서 동양 미술사와 한국 미술사를 강의했다. 또 방학을 이용하여 일본 교토 다이도쿠지(大德寺)에 체류하면서 중세 일본의 선불교 미술과 초암차를 비롯한 다도 예술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그녀의 수준 높은 안목과 해박한 학문적 지식을 통해 『다이도쿠지의 선(大德寺の禪)』, 『일본의 정원』, 『잇큐 선사 연구』 등의 영문판 연구 서적들이 탄생되었다.
또한 조선의 묵죽 화가 이수문(李秀文)이 일본에 건너오면서 초암차가 함께 전래되었다는 가설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수문이 교토 다이도쿠지에 체류하면서 잇큐 화상에게 조선 초암차 정신을 전수한 것에 대한 연구였다. 그 후 코벨 박사는 1981년 초암차의 조선 전래설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전남 담양 소쇄원을 답사했다. 그녀는 역사적 현장들을 둘러보며 소쇄원의 조선 전통정원, 그리고 초당과 정자 등을 통해 초암차실의 원류가 조선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일본에서의 연구와 한국 현지답사로 무로마치 시대 초암차가 조선에서 전래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이 때만 해도 코벨 박사가 『매월당집』을 열독하지 못해서 매월당과 일동승 준장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필자가 『매월당집』에서 준장로에 관한 시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코벨 박사가 한국을 떠날 무렵인 1986년도였다. 아마도 코벨 박사가 매월당과 준장로 사이의 초암차에 관한 사실을 알았다면, 그의 학설도 많이 수정되어 더욱 발전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초암차의 일본 전래의 연결고리 인물은 조선의 묵죽 화가 이수문이 아니라 매월당과 일본 텐류지(天龍寺)의 문학승 월종준초였다. 이와 같이 우리 문화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시각과 깊은 관심으로 지속되어야 하지 않을까.